주원장은 중국 명(明)나라의 초대 황제(재위 1368∼1398). 홍건적에서 두각을 나타내어 각지 군웅들을 굴복시키고 명나라를 세웠다. 호주의 빈농 출신으로, 17세에 고아가 되어 황각사(皇覺寺)라는 절에 들어가 탁발승(托鉢僧)이 되어 여러곳을 전전하였다. 홍건적(紅巾賊)의 부장 곽자흥(郭子興)의 부하가 되면서 두각을 나타내었고 곽자흥의 양녀와 결혼하여 그의 사위가 되었다.
곽자흥의 군대가 분열되자 독자적으로 군대를 모아 세력을 키워나갔으며 원(元)나라 강남(江南)의 거점인 난징[南京]을 점령하였다. 이때 그의 병력은 2만명에 달했고 자신을 오국공(吳國公)이라고 호칭했다. 홍건적 군대가 원나라의 공격을 받고 패퇴하고 나머지 남경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진우량과 소주의 장사성의 군대와 치열한 전투를 벌여 마침내 각지의 군웅들을 모두 굴복시켰다. 1368년 남경에서 명나라를 세우고 연호를 홍무(洪武)라 하였다. 동시에 북벌군을 일으켜 원나라를 몽골로 몰아내고 중국의 통일을 완성하였다.
유백온(劉基)은 고향에서 20년 동안 은거하다가 주원장의 부름을 받아들여 응천(지금의 남경)에서 제갈량이 유비에게 ‘천하삼분지계’의 ‘융중대책’을 논했듯이 주원장에게 계책을 논한다. 그 내용은 소명왕인 한림아를 받들지 말고, 먼저 진우량을 치고 장사성을 쳐서 중원을 평정하라는 내용의 ‘시무십팔책’이었다.
이 계책에 따라 1363년 진우량의 65만 병력과 주원장의 20만 병력이 서로의 운명을 걸고 한달 이상 혈전을 벌인다. 이 전투는 세계 수전사상 최대의 전투로, 나관중의 삼국지 적벽대전의 모티브를 제공한 ‘파양호 전투’이다. 유백온은 1368년 명 건국 후 성의백이 되고 홍무 4년 홍문관 학사로서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낙향한다. .
유백온(劉基)는 어려서부터 총명하였고 천문·기상·역법·군사 등의 분야에 정통하였다고 한다. 유백온이 명리서인 적천수를 저술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학설이 분분하지만 적천수천미 서문 손서의 내용 중 “適天隨一書. 相傳爲京圖撰. 劉誠意註.” 라고 명시되어 있으므로 적천수는 경도가 짓고 유백온은 주해를 달았다고 이해하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보인다.
유백온에 대하여서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온다.
명나라 태조 주원장은 유백온의 재주가 제갈공명보다 더 뛰어다나고 인정하였고, 유백온 또한 자신이 공명보다 못할 바가 있겠냐라고 생각하며 자부심이 대단하였다.
주원장을 도와 명나라를 세우고 개국공신으로서 성의백에 봉해진 유백온이 천하를 두루 구경하던 중 옛 촉한의 땅이었던 촉땅에 들어섰다. 역사의 고적과 풍물들을 두루 구경하면서 날이 저물어 어떤 절에서 하룻밤을 쉬게 되었다. 새벽 첫닭이 울 무렵이 되어 잠이 깨었는데 어디선가 닭이 우슨 소리가 들려왔다. 유백온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인가가 워낙 멀어 닭 울음소리가 안 들릴터인데 왠 닭 울음소리 일까?”
아침에 일어난 그는 궁금하여 주지에게 물어보았다.
“절에서 닭의 울음소리가 들리니 왠일이오?”
주지는 웃음을 띈 얼굴로 대답하였다.
“이 절에는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보물이 있사온데 그것이 바로 흙으로 빚어 만든 닭이옵니다. 그 닭은 옛 촉한 시설의 제갈 공명이 이 절에서 하루 저녁을 지내고 가시다가 기념으로 빚어 놓은 닭이라고 하옵는데 공교롭게도 새벽 닭 우는 시간이 되면 영락없이 울어 시간을 알려주곤 합니다.”
원래 유백온은 자신이 명 태조로 하여금 천하를 통일하여 명나라를 세우게 하였는데 비하여 제갈공명은 겨우 천하를 삼분하는데 그쳤으니 자신보다 못하면 못하지 절대 나을 것이 없다고 평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공명이 빚은 흙닭이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시간을 맞추어 운다니 새삼 놀랄 일이 아닐수 없었다. 도대체 흙닭 속에 무엇을 넣었길래 그 토록 신통하게 시간을 맞추어 우는것인지 궁금하여 그 흙닭을 가져오게하여 깨뜨려 보았다.
그런데, 그 안에서는 아무런 신기한 것은 발견할 수 없었고 오직 글발이 적힌 조그마한 비단 두루마리가 있을 뿐이었다.
그 두루마리에는 유백온파토계(劉基破土鷄) 즉 ‘유백온은 내가 만든 흙닭을 깨뜨릴 것이다’라는 5자가 적혀 있었다.
유백온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자신도 흙닭을 하나 빚어 시험해 보았다. 그러나 유백온이 빚은 흙닭은 울기는 울되 도대체 일정한 시간 없이 밤낮으로 울어댔다.
다음날 유백온은 제갈 공명의 사당이 있는 지역으로 들어섰다. 제왕이나 위인들의 사당에 참배하려면 신분이 높고 낮은 사람을 막론하고 사당에 이르기 일정한 거리에서 모두 말에서 내리기로 되어 있는 하마비(下馬碑)가 세워져 있었다. 그러나 유백온은 제갈공명을 대수럽지 않은 인물로 보았으므로 하마비에서 내리지 않고 그대로 말을 타고 통과하려하였다.
그 하마비를 통과하려는 순간 말발굽이 땅 속의 무언가에 걸려 말이 옴짝달싹도 못하였다. 할 수 없이 유백온은 말에서 내려 종자로 하여금 말발굽 밑을 파보도록 하였다. 그곳에서도 유백온을 훈계하는 듯한 내용의 글발이 나왔다.
시래천지개동력 운거영웅부재모(時來天地皆同力 運去英雄不在謨)
“때를 만나면 천지도 함께 힘을 도와주어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지지만, 운을 만나지 못하면 영웅의 계략도 소용이 없다”
유백온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정신이 퍼뜩 들었다.
공명의 사당 참배를 마친 유백온은 공명의 묘소로 발길을 옮겼다. 공명의 묘소가 시야에 들어오자 유백온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유백온이 고개를 갸우뚱거린 것은 공명이 풍수지리에 너무 어둡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공명의 묘소 뒷 쪽에는 제왕이 묻힐 만한 묏자리가 있었으나 공명은 그것을 모르고 보잘 것 없는 묏자리에 자신을 장사지내게 하였으니 과연 공명은 유백온 자신이 생각한대로 그리 훌륭한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유백온은 공명의 묘소에 올라 참배를 마치고 일어서려는데 이상하게도 무릎이 땅바닥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일어나려고 힘을 쓰면 쓸수록 더욱 굳게 달라붙는 것이었다. 종자를 시켜 그 곳을 파보니
충신불리군왕측(忠臣不離君王側)
“충신은 죽어서도 제왕의 곁을 떠나지 않는다”라는 글발이 나왔다.
유백온의 귀에는 제갈공명의 말이 들려오는 것같았다. 유백온은 감탄한 나머지 한숨을 몰아쉬며 다음과 같이 힘주어 말했다.
전무후무제갈무후(前無後無諸葛武候)
“유사이래 현세에 이르기까지 공명만한 사람없고, 역사가 이어지는 영원한 앞날에서도 공명만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야기 중국사(청아출판사) 발췌)
